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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鲜文译作|隆莺舞:别离史(小说,李范洙 译)

发布时间:2025-06-18 14:02:59  浏览量:2

李范洙,朝鲜族,吉林珲春人,延边作协副主席,曾获《民族文学》年度奖等奖项。

리별이야기

1. 삶은 진지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2020년 7월, 나는 졸업하고 나서 한가해졌다. 바로 취직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렸다. 아무도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지 못했고 나 자신도 기다려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냥 주체할 수 없는 고집이 발동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기다렸다. 가끔씩 나는 휴대폰을 들고 집을 나서서 넓고 한적한 곳을 찾아 전화를 걸군 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말씀드린 일 어떻게 되였나요? 전화를 마치고는 고개를 수굿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얼굴이 갑자기 뜨거워났다. 누가 나의 취직을 반드시 책임지겠다고 약속이라도 했단 말인가.

친구가 가끔 안개꽃, 해바라기꽃 또는 백장미 같은 꽃묶음을 들고 찾아왔다. 제법 로맨틱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투덜투덜 불평하면서 나에게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 너는 어때, 일자리가 해결됐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책장에서 책을 고르다가 힘조절이 안되여 뽑았던 책 한권을 떨어뜨려 발등을 찍히자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너네 집 앞 길가에는 꽃 파는 로점만 해도 열 곳이 넘어. 다들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 너만 이렇게 드러누워 어쩌자는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변명처럼 설명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을 뿐이야!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귤을 까기 시작하였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귤 반쪽을 나에게 건네주며 한숨을 쉬였다. 어떤 일은 그냥 운수놀음이야. 너 랑비할 시간이 얼마나 남았니?

부모님이 차례로 입원하셨고 나는 한동안 바쁘게 보냈다. 아버지가 퇴원하던 날, 우리는 함께 ‘회춘(汇春)’이라는 길을 걸었다. 바람이 길 한끝에서 슬금슬금 불어왔다.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일자리는 정했니? 나는 오래동안 아버지를 자세하게 관찰하지 못했다. 그는 너무 빨리 늙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하얀 눈섭을 찌푸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콜택시를 불러드리려고 휴대폰의 내비게이션앱을 열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 푸른 선으로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코스를 고민하는 척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있는다는 것을 알고는 거짓말을 둘러대기로 했다. 곧 전문대학에서 중국어를 가르칠 거예요, 월급도 괜찮아요. 그는 등을 조금 펴고 흰색 토요타에 올라탔다. 나는 옷깃에 떨어진 락엽을 털어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자 불안은 더욱 커졌다. 심리학을 전공한 친구가 될수록 혼자 있지 말라며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주었다. 가끔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당구를 쳤지만 대부분 경우 공을 구멍에 넣지 못했다. 주인은 10년전 북방에서 이 곳으로 이주해온 사람이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 골목에 정착했는데 게으르고 산만한 사람이였다. 몇번 얼굴을 보고는 아예 가게를 내게 맡기며 일당 50원을 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자신은 집에서 꽃과 새를 그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당구장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고 그는 결국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그 때문에 화가 잔뜩 나있던 그는 어느 날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짜증이 난 김에 부르튼 소리를 했더니 그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조금도 머뭇거림이 없이 나를 재수 없는 년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나도 꿇리지 않고 받아쳤다. 우리 둘은 머리를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알고 있는 욕을 최대한으로 풀어내며 거리낌없이 상대의 자존심을 마구 긁어댔다. 나는 그나마 리성을 되찾으려고 마지막에 이런 말 한마디를 던졌다. 가게 문 닫는 게 내 탓이야? 당신 돈을 받은 적도 없는데 왜 욕설을 하고 그 난리야?! 그가 흥 하고 너 같은 직원을 뽑는 회사는 다 망할 거야라고 소리 치자 나는 갑자기 대답거리가 궁색해졌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냉큼 전화를 끊었다. 취직은 이미 나의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이 되여있었다.

괴로움은 괴로움대로 지속됐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막연하게 기다렸다. 될수록 적게 먹고 학생 시절 벌어놓은 원고료로 하루이틀 연명하다보니 얼마 못가 곤궁해졌다. 친구는 더 자주 찾아왔다. 올 때면 라면과 계란, 쥐똥고추 등 배를 불릴 수 있는 것들을 사들고 왔다. 또 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국수를 끓인다 갈비튀김을 한다 하며 바삐 돌아쳤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더 기다리는 거야 뭐 대수냐라며 비꼬는 걸 잊지 않았다. 어릴 적 엄마가 그래 잘한다 잘해, 더 까불어봐… 하던 어투를 꼭 닮았다. 식사 후 그녀는 나를 잡아일으켜 인적이 드문 오솔길을 찾아 걸었다. 걷다가 화단을 찾아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한번은 뻐스정류장에 앉아 연극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고도를 기다리며≫를 이야기하게 되였다. 그녀는 도무지 리해할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은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그녀의 말뜻을 알아채고 배알머리가 탈려 허랑한 말들을 거침없이 뱉어냈다. 그녀는 대뜸 얼굴이 굳어지더니 몹시 근엄한 표정으로 난 너의 이런 데설궂은 태도가 싫어. 삶은 진지해야 하거든 하고 말했고 그러한 말투가 성가신 나는 더욱 화가 나서 그녀와 한바탕 말다툼을 했다.

그녀가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지금 시한폭탄 같아. 너의 그 이상야릇한 가치관을 리해할 수 없어.

그럼 앞으로 넌 적게 와. 내가 맞받아쳤다. 가치관이 다른데 무슨 친구가 된다고 그래?

그녀가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당황한 기색이 력력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야 간신히 말을 짜냈다. 올 거야. 그러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육신과 말투가 함께 나른해지며 그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친구가 몇달 동안 날 먹여살렸다. 그녀는 가끔 라면이나 쌀을 챙겨주는 정도니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아라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더 많아져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사람과의 관계를 신중히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는 서로에게 등불이 되거나 연료가 되여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점점 그러한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그녀의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였다.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게 그녀에게도 좋았다.

그 무렵 집 근처에 공사판이 생겼다. 새벽녘부터 기계 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곧 매서운 추위가 닥칠 것이나 소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로등이 되고 싶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극소량의 전기만 소모하며 희미한 빛을 내는 가로등이 되고 싶었다. 어느 삼림지대 길가에서 희미하게 빛나다가 수명을 다하고 싶었다.

산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한번 떠오르자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매일 합당한 목적지를 알아보았다. 혼자서 얼마간 지낼 조용하고 외진 곳이 어디 없을가. 겨울의 화로를 상상했다. 해가 지기 전 산에 올라가 산나물을 캐는 자신의 모습도 그렸다. 예전에 할머니가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겨울밭에는 주인이 남겨둔 고구마가 꽤나 있다고, 농민들은 일부러 말끔히 거두지 않고 산속의 미물들에게 얼마간 남겨둔다고. 그 선행으로 래년의 풍수를 기원한다고. 지금의 내가 바로 그 고구마가 절실히 필요한 생명이 아니던가?

나는 산으로 가야 했다.

차거운 몸을 바르르 떨며 이 산 저 산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했다. 밭에 남은 고구마를 깡그리 모아 집으로 갖고 올 것이다. 누군가의 아름다운 소원이 담긴 그 음식물로 연명하며 점점 마르고 조용해지는 나의 모습을 그렸다.

2. 멀리 가야지

어느 날 밤, 청청이 내 안부를 물었다.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우울해보인다며 걱정된다고 한번 만나자고 했다. 그녀와 함께 뮤직페스티벌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Sunset Rollercoaster(落日飞车)’, ‘New Pants(新裤子)’ 같은 밴드의 공연을 보고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이제 용감해지자고, 게으름을 이겨내자고, 일찍 일어나고 술은 적당히 마시고 헐렁한 루즈핏 수트를 입은 녀자가 되자고 약속했었다. 우리는 한때 정말 가까웠지만 시간이 흐르며 련락이 뜸해졌다. 가끔 그녀의 위챗모멘트를 볼 때면 책표지 사진이 많아서 초조했다. 내게 요즘 어떤 책을 읽냐고 물어올가 걱정되였다. 그러고는 실면에 시달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눈섭을 그리고 그녀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 저녁에 만나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술만 퍼부어마셨다. 그녀는 ‘소청매(小青梅)’, ‘수화(秀禾)’, ‘백도(白桃)’를 한주전자씩 주문했다. 우리는 술을 음료수처럼 마셔댔다. 취하지 않을 기세였다.

요즘 어때? 그녀가 물어오자 나는 또 한바탕 나의 생각을 설명했다. 장황설 끝에는 두 손을 활짝 펼쳐보이며 요즘 가장 큰 소원은 깊숙한 산속에서 가로등이 되는 거야. 하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쾌활하게 웃으며 자신도 머리 깎고 절에 가고 싶다고 했다. 밤 11시가 가까워오자 그녀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섰다. 이젠 집에 가야겠다. 나도 빨리 집에 들어가 쉬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날 껴안았다. 그녀의 손은 누구보다 따뜻해서 나의 등을 포근히 덥혀주었다. 오랜만에 누군가와 포옹을 해보았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 냄새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녀가 말했다. 친구랑 시골집 한채 구했어. 이담 민박 같은 걸 꾸릴 수 있을 것 같애. 아직은 뒤죽박죽이지만 좀 정리하면 꽤 살 만해. 너도 와서 같이 얼마간 지내지 않을래? 날 도와 자질구레한 일도 좀 도와줄겸… 그녀의 손가락에 열쇠 한뭉치가 걸려있었다.

나는 열쇠를 받았다. 그녀는 나의 볼을 잡고 잘 지내! 하고 인사하고는 길 건너편의 흰색 승용차에 올라탔다. 그 뒤모습은 녀협객처럼 멋져보였다. 나도 택시를 잡았다. 차 안에서 그녀의 메시지가 왔다. ‘시간 되면 너랑 산나물 캐러 갈게.’ 휴대폰을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감회에 젖은 긴 회답문자를 적었다. 속세의 인연과 만남에 대한 감개와 그동안 나를 잊지 않고 관심해주는 그녀에 대한 고마움 같은 내용이였다. 어렵사리 쓰고는 너무 닭살 돋는 것 같아 다 지워버렸다. 갑자기 그녀의 눈섭 사이 큰 점이 없어진 것을 떠올렸다. 오늘밤 그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니. 결국 ‘고마워’ 세 글자만 보냈다. 그러고는 차창유리를 쭉 내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짐을 꾸렸다. 망명이라도 하는 건가. 아암, 도망 쳐야지. 좋아하는 영화 속 인물처럼 온몸을 검은 천으로 감싸고 문 앞에 단정히 앉아있는다. 어둠이 내리자 보검을 들고 어둠 속이나 불길 속으로 씽하니 뛰여든다. 사실 내게 쓸 만한 무기는 없다. 그냥 책 몇권과 ‘진두(金读, kindle)’ 전자책리더기를 챙기고 새벽이 되기 바쁘게 콜택시를 불렀다. 트렁크를 힘껏 닫고 차에 몸을 실으며 기사아저씨에게 호기롭게 웨쳤다. 아저씨, 출발해요! 마치 새로운 대륙을 개척하러 가는 듯했다.

시골집에 도착해서 한참을 정리했다. 먼저 다락방부터 손보았다. 다락방은 나무로 되여있었고 걸을 때면 삐걱삐걱 소리가 났다. 침대와 천장이 너무 가까워 허리를 숙이고 움직여야 했다. 다락방에 올라가려면 나무사다리를 타야 했다. 방 세개에 마당이 있는 집이였다. 마당에는 쇠붙이와 나무붙이가 쌓여있었고 해당화 몇주를 심은 항아리가 벤치 우에 놓여있었다. 정리를 대충 마치자 동네산책을 나갔다. 산에는 죽은 고목이 흔했지만 부엌에서는 가스레인지를 쓰고 있었다. 주변의 땅을 살펴보고는 퍽 난감했다. 감자도 없고 산나물도 없었다. 삭정이를 줏지 않아도 되였다. 퍼그나 실망스러웠다. 이 곳에 와서야 나는 시간을 별로 쓰지 않고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먹고 사는 문제로 나의 모든 시간을 잡아먹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제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집 옆에 자그마한 광장이 있었다. 광장에는 마작 테블과 그네가 설치되여있었다. 마을주민 한 사람이 갑자기 내 옆에 멈춰 서더니 곧 숯불구이장이 생길 거요. 손님이 몰려올 테니 미리 방을 꾸며두오. 그잖음 돈벌이 기회를 다 놓치고 말 거요라고 뚱겨주었다.

언제면 완공된대요?

래년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때 다시 보죠 뭐.

그는 엥? 하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너무 태평스럽다는 뜻이였다. 그래도 나와 잠간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기는 촌에서 숯불구이장을 건설하는 기회를 다잡아 민박을 차릴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일 바삐 돌아친다고 했다.

며칠 동안 광장에 나가 그네를 탔다. 그네에 앉아 쓰잘데없는 고민을 반복했다. 나중에는 집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소가 새김질하듯이 책을 읽었다. 대만작가 감요명의 ≪방차소녀≫(邦查女孩)를 하루 한페지씩 느릿느릿 읽었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날자를 기록하기 위해 달력을 한장씩 넘기는 것 같았다. 침실 벽에는 2015년 달력 두개가 걸려있었다. 하나는 새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나마 뜯어낸 것이였다. 제일 앞장은 7월 1일이였다. 그 후 나는 그 달력과 시간을 맞추지 않은 벽시계로 날자를 가늠했다.

그런 혼돈의 나날 속에서 몬다를 만났다. 우크라이나 류학생이였다.

그 날 몬다가 담을 넘어 마당에 착지했다. 운석 하나가 떨어진 듯했다. 아무 말 없이 곧장 벤치로 가 해당화 화분을 들고 가버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봐요! 하고 불러세우고 당신 뭐야? 왜 남의 마당에 침입해서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가 하고 웨쳤지만 말소리는 목구멍을 벗어나지 못했다. 오히려 그가 대문밖에 발을 내밀다가 내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더니 먼저 어색한 중국어로 한마디 던졌다. 이 꽃 좀 빌려갈게.

다음날, 몬다는 해당화를 돌려주며 나에게 자몽 반개를 건넸다. 마치 예전부터 친한 사이인양 내 손에 들린 책을 빤히 쳐다보더니 흥분에 겨워 말했다. 몹시 좋아하는 작가인데 아직 책이 없다며 이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렇게 몬다와 친해졌다. 나도 친구가 필요했으니까.

내가 한기에 몸을 옹송그리고 있을 때 몬다가 방에 와 에어컨을 껐다. 그가 스위치를 누를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다.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춥게 해놨을가?라고 생각했다고. 그러고는 가까이 다가와 롱담했다. 중국녀자는 저온에서 키워야 하는 건가? 그는 날 ‘이 사람’이라고 불렀다. 내면화된 어투였다. 몸속에 다른 사람이 사는 듯했다. 그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고 그도 나를 낯선 사람처럼 대하고 있었다.

몬다는 늘 뭔가 말하고 싶어했지만 끝내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몬다의 조금 나온 배가 눈에 보이고 날렵한 외국인이 매일 담을 넘어와 안녕 하고 인사하는 걸 볼 뿐이였다.

그 ‘매일’이란 단어 때문에, 또 모든 것에 극도로 무덤덤해진 나는 게나른한 어조로 몬다에게 청혼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 그가 이끌어주길 바랐다. 혹시 나를 외국으로 데려가주지 않을가. 결혼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였고 수많은 번거로움이 수반될 것이지만 적어도 방향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안돼!

왜?

나 직업도 없는데… 여기서 결혼할 생각이 없어. 물론 핑게였다. 직업 없는 사람들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줄줄이 낳는 걸 많이 봤다.

몬다는 계속해서 리유를 주절주절 늘여놓았다. 고향을 떠난 이방인이고 직업이 없다는 게 주된 리유였다. 그제야 나는 몬다가 중국 현대문학 석사과정을 밟다가 졸업수속이 끝나지 않아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말했다. 우리 시간을 랑비하지 말자.

나한테는 시간이 그리 소중하지 않아. 내가 말했다.

나 아는 친구들 많아… 너처럼 이런 친구 말이야. 언젠가 소개시켜줄게. 그중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그는 갑자기 엉뚱한 아이디어를 냈다.

진짜? 나는 조금 놀랐다.

그가 위챗단톡방을 열었다. 프로필사진을 하나하나 열며 소개했다. 나처럼 졸업 후 ‘마비’된 사람들이란다. 큰 그룹이였다. 인원수가 많았다. 그가 말했다. 네가 방향을 찾으려는 건 좋은 일이라고 봐. 비록 결혼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해도.

내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뭐 할 거야? 어딜 가려구? 여기 계속 있을 거야?

곧 떠날 거야. 그가 말했다.

몬다와도 리별할 때가 왔다. 내가 예전에 사귀였던 다른 친구들처럼. 어떤 관계의 숙명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관계가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진짜로 내게 필요했었다는 것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의 어떤 사람들은 다만 나를 위해 존재한 것이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 그런 관계 속에 있는 나는 가끔 이렇게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그 날 오후, 벽시계가 뎅 뎅 뎅 울렸다. 뭔가를 붙잡아두려는 듯한 요란한 시계의 울림 속에서 우리는 게임을 했다. 그는 이불 속에서 내 발을 더듬었다.

말은 죽지 않아. 언젠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올 거야. 좀 이상하게 들릴 테지만 아무튼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죽지 않을 거야.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래서 몬다를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부터 해봐!

지금이 충만해. 그는 여전히 말을 빙빙 돌렸다. 그 표정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겨울이였다. 모든 게 얼어붙었다. 더 이상 착한 척, 부드러운 척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가식이였다. 이불 속에 웅크리고 누워 몬다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래일 죽으면 뭐가 남을가? 그는 내 이불 속의 오른발을 더듬어쥐더니 발바닥을 주물렀다. 매번 들어올 때마다 온도를 생각하고는 그다음 네 숨이 붙어있는지 확인해. 만약 없으면 어쩌나 싶어.

우리 가족한테 련락할 거야?

당연하지.

경찰에 신고할 거야?

할 거야.

결국 속물이네.

너도 그래. 몬다가 말했다. 이렇게 누워있는 게 가장 속물이야. 이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가장 속물이야.

아주 맞는 말씀이셔. 나는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몬다는 내 발을 주물러주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다. 더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친구 A 이야기를 했다. 진지한 친구 A.

지금의 너랑 비슷해. 비슷한 점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례를 들어… 아니면 그냥 물어보는 거라 생각해도 돼. 발 주무르는 것뿐인데 이렇게 정색해서 경혈도까지 연구할 필요가 있냐고?

필요하지. 지금 기분이 좀 나아졌어?

나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러나 많이 나아졌어라고 대답했다.

몬다에게 또 물었다. 내가 뭘 남겼을가?

그러고는 자문자답으로 중얼거렸다. 스킨답서스(绿萝) 하나 남겼지.

몬다는 매정했다. 발을 주물러주는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한동안은 나는 그의 손가락관절이 나의 발바닥 근육에 적응하기 위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넌 거의 말라죽는 스킨답서스 하나를 남겼지. 그가 말했다.

그는 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역시나 나의 화를 불러왔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그를 방에서 쫓아내려고 했다. 바다 속 물고기처럼 음파로 천적을 쫓고 있었다. 그래도 몬다는 덤덤했다. 내가 손에 쥔 컵을 벽에 던져도 덤덤했다. 내가 침대에서 뛰여내려 걸상을 바닥에 내동댕이쳐도 덤덤했다. 부서진 걸상의 뾰족한 나무쪼각으로 목을 겨눌 때까지 덤덤했다.

이럴 필요까지 있어? 몬다가 물었다. 요란한 소리에 비해 그의 목소리는 아주 미약했다. 그는 두 손을 내밀어 나더러 침착하라는 제스츄어를 취하면서 천천히 집밖에 나갔다. 밖에서도 반쪽 얼굴을 보여주며 그가 아직 이 곳에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이 곳에 있는 게 아니였다.

그 다음은 스킨답서스의 차례였다. 나는 스킨답서스를 뽑아 물에 완전히 담구었다. 그러한 행동으로 몬다에게 만약 내가 래일에라도 죽으면 진짜 아무 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지어 나는 친구 하나도 남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건 너무 시끄러웠다. 나도 그러한 것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누구도 소유할 자격이 없었다. 저온배육은 환경온도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해당된다. 나는 몬다에게 이젠 떠나라고, 더 이상 찾아와서 에어컨을 끄지 말라고 했다.

몬다가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줄곧 녀자의 직감을 믿었다. 이른바 륙감이라고 하는 그것은 번번이 현실에서 검증되고 있었다. 하늘이 준 신통방통한 능력이라고 감탄할 일이였다. 나는 그가 떠날 거라는 걸 진작 알았다. 그는 수시로 나와 굿바이를 웨칠 준비가 돼있었다. 너무한 건 그가 포옹할 때에도 이제 떠나갈 코스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점이였다. 몬다는 세계지도를 머리에 새겼다. 그러한 머리를 달고 담을 넘어왔고 내 에어컨을 끄고 이불 속에서 내 발을 주물렀다.

그가 진짜로 떠났다. 내 집만 나선 게 아니고 담만 넘어간 게 아니고 그의 동굴로만 돌아간 게 아니였다. 배낭을 메고 아프리카로 갔고 인도로 갔다. 나는 태평양의 하얀 뽀트에서도 그의 모습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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